[스페셜 리포트] 미디어 플랫폼, 포기할 수 없는 ‘레드오션’

IT∙유통 기업 가세…몸값 치솟는 콘텐츠 시장

추신수 선수

지난 1월 신세계그룹은 SK와이번스(SSG랜더스)를 인수한 직후 당시 미국 메이저리그(MLB) 자유계약선수(FA)인 추신수 선수를 영입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연봉은 KBO리그 역대 최고액인 27억원입니다. 추신수 선수를 원하는 인천 팬 목소리에 대한 신세계그룹의 화답이었습니다.

스포츠 구단의 선수에 대한 과감한 투자는 스타성과 실력 등을 고려해 결정됩니다. 이는 구단 가치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기업 이미지 제고에도 중요한 요인입니다.

[관련 기업 : 이마트]

이마트 주주 구성

신세계그룹의 야구단 인수와 추신수 선수 영입이 더욱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유통’입니다. 신세계그룹은 전통 오프라인 유통 강자이지만 쿠팡, 네이버, 카카오 등이 온라인 유통 시장을 흔들면서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본업(유통)과 야구를 연결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업계 추측은 공식화됐습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그렇다면 수많은 스포츠 중 왜 하필 야구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기가 많으니까요. 인기가 많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관람한다는 것이고 그만큼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야구가 특정 브랜드를 알리기에 좋은 스포츠 중 하나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신세계그룹이 지난해 드라마 제작사 2곳을 인수했다는 것입니다. OTT시장에 진출하기 위함이죠. 그렇다면 야구와 OTT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신세계그룹은 도대체 무슨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걸까요?

◆스마트폰 태동과 미디어 산업…쏟아지는 ‘콘텐츠’

신세계그룹 행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디어산업 환경 변화와 콘텐츠 시장 동향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내는 물론 글로벌 미디어산업은 애플 아이폰을 중심으로 한 스마트폰 보급(2007년)이 본격화된 시기를 기점으로 격변의 시기를 맞이합니다. 언젠가부터 TV 시청을 위한 ‘본방사수’란 말은 어색한 단어가 돼 버렸습니다. 특정 콘텐츠를 즐기기 위한 시간과 수단에 대한 결정권이 소비자로 넘어온 것입니다.

산업 환경이 변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기득권 몰락에 있습니다. 당시 KT가 아이폰 판매 관련 애플과 협상과정에서 와이파이(WIFI)가 탑재되지 않은 모델을 요구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애플은 이를 거절했고 결국 KT는 애플의 제안을 수락하게 됩니다. 수익과 직결되는 모바일 데이터 요금 부과에 제한이 걸린 셈입니다.

결정적으로는 위피(WIPI)가 시장에서 퇴출됩니다. WIPI는 안드로이드, iOS와 같은 운영체제입니다. 애플이 WIPI 탑재를 거절하면서 국내 모바일 시장 생태계가 본격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기존 통신사들이 쥐락펴락하는 산업구조가 개방 형태로 바뀌면서 각종 어플리케이션(이하 앱) 공급도 급속도로 늘어나게 됐습니다.

애플의 앱스토어와 구글의 플레이스토어는 개발자들을 등에 업고 앱 시장을 점령하게 됩니다. 스마트폰 출범 이전 앱 시장 구조는 현재와 확연히 다릅니다. 이전에는 통신사는 물론 유통시스템을 운영하는 주체, 유통업자, 제작자 등으로 구성돼 있어 실질적으로 제작자에게 돌아가는 수익(10% 이하)은 크지 않았습니다. 반면, 애플과 구글이 주도하는 앱 시장은 개발자가 수익의 70%를 가져가는 구조로 기존 시장 판을 뒤엎기에도 충분했습니다. 앱은 각각 하나의 플랫폼이지만 앱 마켓 입장에서 보면 콘텐츠입니다. 플랫폼이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면 그 파급력이 얼마나 큰지 확인한 사례입니다.

[관련 검색 : 산업분석 탭-미디어]

미디어 사업자별 시장 점유율

국내 미디어 시장이 스마트폰 보급 이후 이전과 달리 가파른 성장을 보인 가운데 기업별로는 다른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지상파 시장점유율은 점차 축소되고 통신사들이 IPTV를 앞세워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넷플릭스가 국내에 상륙한 2016년 이후 미디어 시장은 정체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이점은 이 기간 동안 미디어 콘텐츠 사업자 몸집은 더욱 커지는 반면 미디어 플랫폼 사업자 외형이 축소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넷플릭스와 같은 OTT(Over The Top)가 시장에 침투하면서 국내 미디어 시장이 지상파, 통신사, IT기업 3강 체제 중심 경쟁이 심화된 탓입니다. 수요가 많은 콘텐츠 몸값은 상승하고 플랫폼 사업자들의 콘텐츠 확보를 위한 자금 부담은 확대됐습니다. 아이폰 국내 상륙 이전과 완전히 상반된 산업 환경이 조성된 상황입니다.

높은 평가를 받는 콘텐츠 사업자와 낮은 평가를 받고 있는 플랫폼 사업자

그렇다면 넷플릭스는 어떻게 성장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단순히 많은 양질의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많은 드라마 제작사들에 100%가 넘는 제작 비용을 지원하고 오리지널 컨텐츠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스튜디오드래곤이 제작한 ‘스위트홈’이 대표적인 사례죠. 제작자를 우대해야 자신들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셈입니다.

[관련 기업 : 스튜디오드래곤]

CJ ENM 자회사인 스튜디오드래곤 시가총액은 CJ ENM과 같은 수준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은 넷플릭스가 기술기업이 아닌 미디어기업임을 강조한 점입니다. 각종 드라마, 영화 등 콘텐츠를 담고 있는 넷플릭스는 단연 미디어라 할 수 있지만 이 발언은 콘텐츠를 단순 양과 ‘추천’을 통한 맞춤형으로만 승부하는 것이 아닌 질적으로도 충분히 그 역량을 갖추겠다는 의미입니다. 여전히 국내 미디어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지상파, 통신사들에 사실상 선전포고를 한 것이죠. 이들 시장 점유율이 더 쪼그라들 것이란 전망도 무리는 아닙니다.

국내 OTT 시장에는 넷플릭스와 최근 상륙한 디즈니 플러스, 포털 사업자인 네이버, 메신저 사업자인 카카오 등이 있으며 국내 문화산업 큰 손인 CJ그룹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관련 기업 : CJ ENM]

그리운 2018년 CJ ENM 주가

CJ그룹 내 플랫폼과 콘텐츠를 주력으로 담당하는 CJ ENM은 과거 CJ E&M과 CJ오쇼핑이 합병돼 출범했습니다. 각종 콘텐츠와 홈쇼핑을 결합해 라이브커머스를 지향한다는 취지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선택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경쟁이 심화되는 미디어시장에서 GS홈쇼핑 등도 외형을 지속 확대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내 스트리밍 서비스인 아프리카TV의 쿠팡과 연합, 신세계그룹 OTT 진출 등 라이브커머스 강화는 홈쇼핑 업체들이 모바일로 거쳐를 옮기게 만들었습니다. 미디어산업이 3강체제를 넘어 유통사업자들까지 가세하는 말 그대로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든 것입니다.

이제는 각 미디어 플랫폼의 독점 콘텐츠 마련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돼 버렸습니다. 최악의 경우콘텐츠를 확보하지 못하면 본업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입니다.

◆스포츠, 모두가 이해하는 최고의 콘텐츠…e스포츠로 확대

지난 2018년 KBO는 그동안 특혜 논란이 잦았던 에이클라엔터테인먼트에 대해 프로야구 유무선 중계권을 종료하고 이듬해인 2019년 공개입찰을 실시했습니다. 뉴미디어를 통한 프로야구 시청이 늘고 있지만 정작 중계권 가치 상승과 KBO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은 탓이었습니다. 입찰 결과(TV 중계권 제외) 통신/포털 컨소시엄이 방송사 컨소시엄을 제치고 승리했습니다. 이전 100억원도 채 되지 않았던 유무선 중계권 가치도 200억원을 수준으로 크게 올랐습니다.

이 사건 역시 스마트폰이 국내 통신사들이 잡고 있던 앱 시장을 개혁한 것과 유사합니다. 독점을 부수자 콘텐츠의 가치가 오르고 구단으로 지급되는 금액도 많아지게 됩니다. 각 구단들은 더 훌륭한 선수를 영입하기 위한 투자에도 더욱 집중할 수 있습니다.

야구는 인기 종목이기도 하지만 스포츠라는 장르 특성상 문화 경계를 뛰어 넘습니다. 사실 드라마, 영화 등 콘텐츠의 가장 큰 걸림돌은 ‘문화 장벽’으로 언어 의역, 각국 관습 등에 따라 국가별로 영향력이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스포츠는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서 단연 최고라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선수들의 경기 장면은 물론 훈련 과정 등 뒷이야기도 콘텐츠로 제작되고 있습니다. 신세계그룹이 왜 야구 구단을 인수했는지 좀 더 명확해지실 겁니다. 야구를 통한 스타성과 팬덤에 집중하는 것을 넘어 신세계만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통한 그룹 브랜드 가치 제고가 예상됩니다.

출처: PwC

[관련 기업 : 아프리카TV]

게임을 중심으로 한 e스포츠 성장세도 만만치 않습니다. 아마존 계열사인 트위치와 구글 계열사인 유튜브 등이 크게 성장한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국내서는 아프리카TV가 스포츠는 물론 e스포츠 부문에서도 강점을 갖고 있습니다.

게임 또한 콘텐츠 중 하나로 단순 즐기는 도구에서 벗어나 커뮤니티 수단 중 하나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과거 넷플릭스가 배틀로얄 장르 게임인 포트나이트를 경계하는 발언에 시장 이목이 쏠린 이유입니다.

◆미디어 플랫폼, ‘다른’ 성장 ‘같은’ 경쟁…누적되는 소비자 피로도

현재 미디어 산업에서 경쟁을 벌이는 주체는 크게 지상파, 통신사, 인터넷 사업자, 유통 사업자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들은 분명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같은 곳에서 경쟁하게 됐으며 최종 목적은 전부 다릅니다.

각 주체별 전략을 살펴보면 인터넷사업자는 웹소설 등 지적재산권(IP) 확보 및 타업종과 제휴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통신사들과 지상파는 이전부터 연합을 추진해오고 있으며 유통사업자들은 콘텐츠를 통한 ‘락인효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각 사업자들의 경쟁에 소비자들은 다양한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피로도 또한 늘었습니다. 지난 2018년 PwC는 미국에서 18세에서 59세 사이의 소비자 중 가계소득이 4만 달러 이상인 2016명을 대상으로 콘텐츠와 관련 소비 동기, 불만, 희망사항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응답자 절반 이상은 모든 비디오 콘텐츠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답했습니다. 당시 기존 TV와 방송사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손을 잡고 공동 스트리밍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아마존, 애플, 구글 등 기존 강자들도 자체 솔루션을 출시하는 등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를 넘어 고객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국내 미디어 시장도 다수 주체들이 난입하면서 유사한 문제들이 발생될 것으로 관측됩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는 크게 지상파+통신사, 인터넷사업자 등 두 곳으로 구분됩니다.

[관련 기업 : 네이버] [관련 기업 : 카카오]

네이버 VS 카카오 매출액 추이 비교

인터넷사업자인 네이버와 카카오는 단연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각각 포털과 메신저라는 강력한 기반을 갖고 경쟁적 지적재산권(IP) 확보와 동시에 국내 대기업들과 손을 잡는 모습입니다. 신세계그룹과 CJ그룹은 네이버와 한배를 타면서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고 있습니다.

카카오는 콘텐츠 강화와 동시에 SKT와 손을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콘텐츠 커머스와 모빌리티 등 일부 부문에서는 양사 경쟁이 오히려 격화되는 모습입니다.

통신사 중에서는 SKT 행보가 가장 눈에 띕니다. 카카오는 물론 지상파들과 연합(웨이브)에 이어 넷플릭스와 협업 가능성도 열려 있는 상황입니다. 미디어 부문에서 또 다른 강자로 꼽히는 아프리카TV는 쿠팡과 손잡고 라이브커머스를 선보일 계획입니다. 각종 스포츠와 e스포츠 중계에서 강점을 갖고 있는 아프리카TV가 복병이 될 수도 있습니다.

[관련 기업 : 롯데쇼핑]

콘텐츠 커머스 업계만 놓고 보면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 참여하는 롯데그룹이 가장 불리해보입니다.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를 넘어 고객 피로도를 낮추는 것이 관건인 상황에서 롯데그룹이 어떤 전략을 펼칠지 관심이 쏠립니다.

미디어 산업은 ‘레드오션’이지만 포기할 수 없는 시장입니다. 각 주체별 주력 사업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총성 없는 전쟁’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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