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SK가 쏘아 올린 투자형 지주사 그리고 한국 증시 변화

최태원 SK그룹 회장. 출처=SK그룹

최근 SK텔레콤은 자사주 869만주를 소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총 발행주식 대비 10%에 해당되는 물량으로 말 그대로 ‘역대급’입니다. SK텔레콤은 SK그룹 주력 계열사 중 하나로 지배구조 개편에서 핵심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한번쯤 SK텔레콤 인적분할 얘기를 들어 보셨을 겁니다. SK텔레콤을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나누고 이후에는 투자회사를 그룹 지주사인 SK㈜와 합병하는 시나리오가 주를 이뤘습니다.

시장이 이 이슈에 큰 관심을 가졌던 배경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있습니다. 일명 ‘자사주 마법’이 포함된 이 시나리오는 우선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가 인적분할 후 신설법인(투자회사)에 귀속되고 존속법인(사업회사) 지분은 중간지주(투자회사)에 현물출자합니다. 이후 투자회사를 SK㈜와 합병하는 과정에서 자사주를 활용해 최대주주(최태원 회장) 지분율 희석을 최소화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관련 기업 : SK텔레콤]

여기서 핵심은 자사주 의결권 부활입니다. 과거 SK C&C와 SK㈜가 합병하는 과정에서도 자사주가 활용된 만큼 SK텔레콤을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는 기정사실로 받아 들여졌습니다.

따라서 SK텔레콤 자사주 소각 소식은 시장을 놀라게 하는데 충분했습니다. ‘자사주 마법’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면서 시장 예상을 완전히 뒤엎어버린 겁니다.

사실 SK그룹 입장에서도 관련 시나리오가 포함된 기사가 줄줄이 나오는데 상당히 부담이 됐을 겁니다. 그 어떤 그룹보다 ESG경영을 외치며 주주가치 제고를 강조하는 상황에서 ‘자사주 마법’을 쓴다면 시장 참여자들이 느끼는 배신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또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이 과거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뭇매를 맞았던 만큼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관련 검색 : 자사주 마법]

SK그룹은 SK㈜와 SK텔레콤 투자회사 합병에 대해 계획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지 않겠다’라고 언급하진 않았다는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자사주 소각과 SK㈜, SK텔레콤 지주사 합병을 동일 선상에 놓고 있지만 이것은 별개 문제입니다. 자사주 소각으로 두 기업 합병 시 대주주 지분율을 높이는 ‘꼼수’가 없어진 것 뿐입니다.

SK㈜와 SK텔레콤이 합병을 해야 하는 이유는 SK하이닉스가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SK㈜의 손자회사입니다. 공정거래법 상 지주사의 손자회사는 인수합병(M&A)을 진행할 경우 100% 지분을 확보해야 하는 탓에 자금부담이 상당합니다. SK하이닉스가 지주사의 자회사로 변경된다면 상대적으로 투자가 자유롭고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관련 기업 : SK하이닉스]

SK그룹은 각종 굵직한 M&A 거래에서 전략적·재무적투자자들 끌어들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2018년 SK그룹 주요계열사들은 투자플랫폼인 SK동남아투자법인을 설립했으며 2019년에는 베트남 빈그룹 지주사 지분 6.1%(1조1800억원)을 매입했습니다. 당시 SK그룹은 IMM인베스트먼트와 손을 잡았습니다.

SK인포섹과 합병한 ADT캡스는 2018년 SK그룹에 편입될 당시 맥쿼리가 인수를 도왔습니다. 한편 11번가는 토종 사모펀드인 H&Q코리아에 이어 아마존으로부터 투자를 받는 등 SK그룹이 거래구조를 짜는 능력 또한 높은 것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2019년 말에는 SK텔레콤과 카카오가 자사주 교환을 통해 전략적 협업에 나서는 등 다양한 방안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의외였던 거래는 다름 아닌 SK하이닉스였습니다. 지난해 말 SK하이닉스는 인텔 낸드플래시 부문 단독 인수에 나섰습니다. 거래대금은 10조원으로 부담이 상당한 규모입니다. 그간 SK그룹이 보여준 행보를 보면 상당히 이례적인 움직임이었습니다.

이는 지배구조 개편을 감안하면 무심코 지나칠 수 없는 이슈였습니다. 100% 지분 인수라는 것은 결국 ‘손자회사로 남겠다’는 것을 암시하는 셈이었습니다.

버크셔해서웨이 꿈꾸는 SK그룹

투자형 지주회사를 검색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그룹이 바로 SK그룹입니다. 시장에서는 SK그룹이 투자형 지주사를 지향한다는 공식 발표를 하기 전부터 그런 모습을 갖췄다고 평가해왔습니다. 국내 주요 그룹들과는 달리 M&A로 기반을 닦고 성장한 기업이니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투자형 지주사란 무엇일까요?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기업이 워렌 버핏 회장이 이끌고 있는 버크셔해서웨이입니다. SK그룹이 ‘한국판 버크셔해서웨이’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많은 투자자 분들은 버핏과 같은 투자의 대가가 되는 것을 꿈꿉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애석하게도 가능성은 제로(0)입니다. 일반 투자자와 버핏은 기본 현금흐름부터 격차가 크기 때문입니다.

버크셔해서웨이 주가 추이

지난 2010년 워렌 버핏은 주주 서한을 통해 “손해보험 사업은 버크셔해서웨이의 성장엔진이자 진정으로 멋진 사업”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보험회사는 계약자로부터 먼저 보험료를 받고 보험금은 한참 나중에 지급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감이 오실 겁니다. 버핏은 버크셔해서웨이를 통해 수많은 보험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실제로도 보험지주사입니다. 고객들의 보험료가 투자 원천이며 이미 수십년 전부터 제로(0) 금리 수준으로 자금을 조달해 투자를 해왔습니다. 여러 보험사를 거느리면서 ‘플롯(float: 수입과 지출 시차에서 발생하는 여유자금)은 안정화되는 등 투자는 물론 출중한 자금조달 능력을 갖춘 인물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많은 금융기관들이 도움을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에서 버크셔해서웨이는 유동성 공급자 역할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헐값에 시장에 나오는 기업을 사들이는데 충분한 여력을 갖췄고 버핏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SK그룹은 현금흐름 측면에서 보면 버크셔해서웨이가 되기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통신, 석유·화학, 정유 등 주력 계열사들의 안정적 현금흐름이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통신은 사실상 불황이 없는 안정적인 사업입니다.

그렇다면 투자형 지주사를 위한 핵심 능력인 투자는 어떨까요? 최근 2년간 SK㈜의 SK바이오팜 상장 후 일부 지분매각, SK E&S의 파주에너지서비스 일부 지분매각 등이 있으며 또 SK㈜와 SK E&S는 각각 비지배 목적인 투자자산 등을 각각 매각해 총 4조5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회수했습니다. SK E&S는 SK㈜ 자회사로 지속 배당을 통해 지주사를 지원해오고 있어 현금흐름은 SK(주)로 흘러가는 모습입니다.

[관련 기업 : SK E&S]

이러한 투자 및 자금회수 방식은 투자회사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국내 여타 지주사들이 ‘buying & holding’ 전략을 통해 자체 사업을 지속 키워 나가는 것과는 분명 다른 방식입니다. SK그룹은 회수한 자금을 새 투자처에 투입할 계획을 갖고 있어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질 전망입니다.

이 측면에서 본다면 SK텔레콤의 중간지주사 전환과 자사주 소각 이유는 더욱 뚜렷해집니다. 우선 SK㈜가 보유한 SK텔레콤 지분율은 30%를 넘게 됩니다. 지주사의 자회사 지분율을 기존 20% 이상에서 30% 이상으로 상향 조정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사정거리에서 벗어나게 되는 겁니다.

SK㈜가 SK실트론, SK머리티얼즈 등 반도체 관련 기업을 직접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SK하이닉스를 대신해 SK텔레콤 중간지주가 직접 투자에 나설 수도 있습니다. SK텔레콤 중간지주는 더 이상 통신회사가 아닌 ICT 기업이기 때문에 그 명분도 충분합니다. 반대로 매각도 보다 수월해집니다.

주력 사업을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투자를 하면서 불필요한 자산을 매각해 자산 효율성을 높이는 것 그 차제가 다름 아닌 투자형 지주사입니다.

SK㈜의 ‘140조 가치 목표’…지주사 중심 시장 밸류업 기대

SK㈜는 지난 3월 오는 2025년 시가총액 140조원을 달성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당시 시총액은 20조원 수준으로 목표 기한까지 무려 기업가치를 7배 제고하겠다는 뜻입니다. 연평균 70%씩 상승해야 가능한 엄청난 수치입니다. SK㈜가 특정 투자 대상으로 소위 말하는 ‘대박’을 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때문에 여전히 SK㈜와 SK텔레콤 투자회사 합병 가능성이 거론됩니다.

‘140조 밸류’가 현실이 된다면 국내 주식시장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국내 지주사들은 ‘만년 저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그룹 승계와 지배력 등에 집중되면서 투자매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습니다. 투자형 지주사 출범과 기업가치 제고가 맞물리면 투자자들의 인식 변화와 동시에 여타 그룹 지주사에도 자금이 몰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관련 기업 : SK-경쟁사 비교 분석]

그만큼 국내 대기업 그룹을 중심으로 활발한 투자활동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뤄진다는 뜻입니다. 이는 국내 증시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SK그룹 뿐만 아니라 여타 그룹 지주사들도 자산 매입과 매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시대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목적이 투자 환경을 바꾸는 격입니다.

ESG경영으로 기업들은 투자자로부터 감시가 강화됩니다. 단순 지배력에만 머무는 것이 아닌 자산효율성을 높여 영위하고 있는 사업과 투자대상에 대한 가치도 고려해야 합니다. SK그룹이 쏘아 올린 ‘투자형 지주사’가 국내 증시 판도를 바꾸는 계기가 될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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