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진만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 부사장은 지난달 실적 컨퍼런스 콜에서 “인위적 감산은 없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소식이 들리면 늘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어가 ‘치킨 게임’입니다. D램 가격 하락에도 기존 생산능력을 유지하면서 경쟁사 마진율을 압박하는 전략인데요. 인텔, SK하이닉스 등이 감산 계획을 발표한 것과 분명 대조적입니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증산’을 언급한 것은 아니에요. 물론 전체 D램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현 수준의 생산능력을 유지하는 자체가 증산과 일부 같은 효과를 냅니다. 하지만 고용량, 고효율 제품 수요 증가세에 대비한다는 것은 공정 고도화 목적입니다. 이 과정에서 생산 능력은 떨어지기 때문에 ‘치킨 게임’을 한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워요.
또 삼성전자는 재무비율 변동이 상당히 작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반도체 사이클 진폭이 상당함에도 삼성전자가 잘 버티는 이유 중 하나에요.
그렇다면 ‘공정 고도화’에 초점을 맞춰 볼게요.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 등과 같은 기술을 원활히 구현하기 위한 데이터센터 수요는 지속적이면서도 여기에 공급되는 반도체 성능이 충분히 받쳐줘야 합니다. 이 과정(공정 고도화)에서 ‘자연 감산’이 발생하기 때문에 삼성전자는 단순 물량과 가격 싸움을 하기 보다 치밀한 전략을 갖고 대응한다고 봐야 합니다.
반도체 공정을 고도화 한다는 것은 수율과 직결됩니다. 수율이란 총 생산량 중에서 양품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데요. 만약 A제품을 10개 생산했는데 그 중 1개만 불량품이라면 수율은 90%라고 합니다. 높은 수율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다른 기술과 결합했을 때 더 큰 의미를 지닙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제조 완성도가 90%인 기업이 수율 90%인 반도체를 사용하면 최종 판매할 수 있는 제품(불량이 아닌 제품)은 전체 생산량 대비 81%가 됩니다. 스마트폰 제조사가 최종 고객(소비자)으로부터 신뢰도를 얻으려면 당연히 수율이 높은 반도체를 선택해야 하기 떄문에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도 수율은 고객에 대한 신뢰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됩니다.
수율이 높아지면 원가경쟁력은 물론 인건비 등 각종 비용 부담이 줄어듭니다. 현재 글로벌 시장 상황은 인플레이션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매출보다는 원가 등 비용통제가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분위기는 공급망 문제로부터 촉발됐기 때문에 단기 내 해소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워요.
여기서 잠깐 삼성전자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지 추정해 볼게요. 삼성전자는 수 년 전부터 자산활용도가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수합병(M&A) 등을 고려하고 있지만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편, 인플레이션이 전 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매출 확대를 시도하는 것도 무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경제적 해자’가 되기 위한 필수조건인 원가경쟁력을 높여 고객 부담을 덜면서 마진을 확보하는 전략이 유리할 겁니다. 이 때 공정 고도화에 따른 수율 향상이 고객으로부터 더 큰 신뢰를 얻게 되는 촉매가 됩니다.
따라서 삼성전자는 ‘수율=고객 신뢰’라는 반도체 산업에서 근간이 되는 부분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치킨 게임’이 아닌 ‘자신과의 게임’을 메인 이벤트로 내세우고 있다는 판단이 더 옳지 않을까요? 삼성전자는 단 한 번도 단순히 돈이 많고, 펀더멘탈이 좋다는 이유로 무작정 시장에 불도저처럼 뛰어든 적이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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